교회는 모든 백성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가 백인과 중류층 계급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너무도 큰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백인도 아니었고 중류층도 아니었으며 예수님의 교회도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자신의 주체성이나 유산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하한 인종적, 종족적인 고정관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교회는 참으로 모든 인종과 언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관계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편견과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하시지 못하게 방해하는 어떤 인종적 혹은 사회적 장벽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를 방해할 수 있는 것들 중 한 가지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의문화권 안에서 생활할 때 우리는 편안하고 안전합니다. 자기의 문화권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적 사인들과 그것들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 사회에 의한 용납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 가면 우리는 해도(海圖)에 표시도 없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므로 그 문화의 사인들을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결국 거절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종종 빠집니다. 만일 점검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그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증오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증오가 인종 차별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는 그런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염려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주님이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누리셨던 평안과 안전을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평안과 안전을 버리고 자기 주위에 있는 여러 가지 종족 그룹으로 나아가야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 가족 내에 다른 문화와 인종 그룹들에 속한 사람들이 열 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직장 동료들이나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그들이 우리와 같은 골목에 살거나 우리가 참가하는 클럽의 회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된 사회적 환경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작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화에 들어가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흔히 생길 수 있는 오해들
첫째 오해는, 미국이란 나라는 모든 문화 둘을 '혼합시키는 도가니'라는 신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조만간 우리가 서로서로 혼합되어 동질의 한 사회를 형성하게 되며, 그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일한 문화적 이해를 갖게 될 것이라 하는 의미입니다. 이 말이 미국으로 밀려왔던 초기 이주민들에게는 아마 어느 정도 맞았겠지만 오늘날은 분명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을 '문화 스튜(에이레 요리의 일종으로 여러 종류의 야채를 재료로 함)'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도 더 좋은 비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한 나라이지만 여러 가지 인종 그룹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그룹들은 스튜 속에 있는 야채들처럼 그들 고유문화의 모양이나 색깔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홍당무를 감자와 강낭콩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오는 많은 사람들은 꼭 영어를 배우거나 미국 문화의 주류에 적웅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이 문화적 및 인이적으로 용남 되는 공동 게에서 자신들의 종족 형제자매들과 어올린다, 예를 들면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4만 명의 캄보디아 난민들은 통비치 주변에 지주 하는데 매우 배타적이며 또 1만 2천 명의 라오스 난민들은 미네소타의 세인트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둘째, 또 다른 오해는 우리가 자신의 문화를 마치 '기독교' 문화인 것처럼 인식하는 그 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복음을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켤 수 있습니다.”는 말과 유사한 이야기를 그리스도인들이 혼히 합니다. 기독교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많은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복음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방송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자주 복음을 백인 및 중산층에 일치시켜 왔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백인이나 중류층 문화에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거주하는 캄보디아 난민들을 생각해 보라. 분명히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소유하고 있으니 때문에 쉽게 기독교 방송을 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중 대다수가 영어를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므로 그 방송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비록 영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메시지가 문화적으로 전혀 다르므로 그들은 복음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자신들의 삶에 적용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들의 고국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교사로 파송될 것입니다. 그 선교사들이 과송되기 전에 그들은 타문화 선교(전도)에 더욱 잘 준비되기 위하여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것입니다. 어떤 특수한 종족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하여 그것이 곧 그들 자신의 문화적 주체성마저 남겨 두고 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르고 여러 가지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그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기 꺼이 헌신할 것인가?
이미 언급했다시피 문화적 경계선을 뛰어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우리는 오해를 받고 거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장애들로 인해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플로이드 맥클랑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교회와 그 교회가 후원하던 한 무리의 베트남 난민들 사이에 발생했던 오해 한 가지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 교회의 소망은 단순히 난민들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집에 거주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가 서자기들의 힘이 닿는 대로 베트남 난민들을 도우면서 실제적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를 원했을 뿐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난민들이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또 교인들이 그들에게 가서 도와주고자 했을 때 단호히 거절하자 그 교회는 다소 실망감과 이용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그 교회에서는 배은망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오해는 극동 아시아의 문화에 관해 잘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은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후원자에 대해 느끼고 있던 의무감 때문에 꺼려했던 것입니다. 고국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일단 교회가 이 점을 이해하고 나자 그 점을 통해서 교인들은 자신들이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비유를 발견했습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져야 할 책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것은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2022.07.03 - [유용한정보들] - 마음의 신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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