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용한정보들

내 뒷모습에서 무언가 느껴주기를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고생깨나 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다지 힘든 일은 없다. 이를테면 출퇴근만 해도 마침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시는 길목에 우리 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서 아침마다 자동차로 학교 가까운 곳까지 태워다 주신다. 나 혼자 걷는 거리라고는 학교까지 겨우 수백 미터밖에 안 된다.

 

부지런한 어머니를 향한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근처 공장에서 일하셨다. 내가무사히 횡단보도를 다 건너는지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총총걸음으로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를 향해 달려가시는 걸 나는 등 뒤로 느끼곤 한다. 정말 부지런한 우리 어머니는 어지간한 일이 아닌 한 공장 일을 쉬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줄곧 공장에 다니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나와 내 동생을 길러주셨다. 특히 내가 눈이 나빠진 뒤부터는 그야말로 온 정성을 다해 나를 돌봐주셨다. 때로는, 이거 과잉보호 아네요?라고 투정을 부릴 만큼.

 

우리 집에는 내가 어릴 때부터 수영 대회에서 따온 각종트로피며 표창장이 집이 좁을 만큼 잔뜩 진열되어 있다. 이제 그만 좀 치우자고 해도 어머니는, 이건 우리 아들의 생생한 역사인데 영원히 진열해두고 자랑할 거라면서 들은 체도 안 하신다.
중학교 교사가 된 다 큰 어른이 아침 출근 때마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는 건 좀 보기 흉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나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아침의 이 조그만 일과를 고맙게 받아들인다.

 

퇴근할 때는 방향이 같은 선생님이 태워다 주신다. 그리고 밤에는 부모님이 집에 계시니까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 마 이사카 중학생으로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등교나 하교 때마다 누군가가 내게 어깨를 빌려주었다. 나는 그 어깨에 뒤에서 손을 올려놓고 걸었다. 모두가 내 눈이 되어 주었다. 물론 되도록이면 나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학용품
학용품이미지

제일 큰 배려

지금도 학교 안을 오가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학교 건물이며 수영장, 학교 내의 시설은 모조리 내가 재학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단 숫자까지 다 외워서 수업에 좀 늦을 것 같으면 계단을 몇 개씩 뛰어 올라가기도 한다. 학교 측의 나에 대한 배려도 많다. 제일 큰 배려는 인적인 것.

 

팀 티칭 수업에 대해서는 이미 밝힌 그대로이고, 그밖에도 상근 교사인 다카야나기 선생님이 나를 도와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며 직원회의의 자료 등을 소리 내어 읽어주신다. 다른 선생님들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다. 물품의 도움도 적지 않다. 교무실 내 책상에는 화면을 음성으로 표시해주는 장치와 노트북이 버티고 있고, 점자로 번역된 교과서도 갖춰져 있다.

 

점자로 표시할 수 있는 전자수첩도 있다. 요즘은 과학 기술이 잘 발달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직업을 갖고 업무를 처리해내기가 쉽게 되었다. 그리고 눈 어둔 선생님이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 학교는 바닥에 일체 물건들을 놓지 않게 되었다. 학교 전체가 앞이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인적인 배려나 컴퓨터 같은 기계류가 없었다고 해도, 일이 힘들다고 교사직을 그만두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교사로서 힘들 때 참된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배려 여부가 아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아이들이 나를 위해 활발하게 발표해주는 목소리이다.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찾아와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이 있으면 나는 정말 마음이 흐뭇하다. 우리 반 학생들은 이제 자리표로 거의 다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목소리만 듣고 아는 학생은 아직도 몇안 된다. 오늘은 사회 수업 시간에 세계의 의식주라는 새 단원이 시작되길래 나는 이집트 사람 의상을 입고 교실에 등장했다. 순간 와아, 하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열대 건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복장으로 좋은 예가 될 것 같아 이집트 의상을 입고 나갔다. 그러나 사실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좀 높여볼까 하고 오래 망설이던 끝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입어본 의상이었다. 이 이집트 의상은 내 친구인 다케다 요시히토가 이란에 휠체어 배구시합을 하러 갔던 길에 선물로 사다 주었다.

학교가는길
스쿨존

 

좋은 지적

다케다는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없는 지체장애자로, 바르셀로나 패럴림픽 때는 수영 선수로서 활약했다. 현재는 휠체어 배구의 시드니 패럴림픽 일본 대표 선수를 목표로 분투하고 있다. 그날 초임자 연수 실천 기록 노트에 나카무라 선생님의 강평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이집트인의 의상을 입고 등장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회과는 특히 실감 나게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학교에서는 직접 체험학습으로 시작해 점차 의사 체험, 간접 체험학습으로 진행해갑니다. 되도록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단원 도입부에서 학습 의욕을 높이는 중요한 기능입니다. 학생들의 조사 학습에 대한 도전도 정말 훌륭했지요?" 이집트인의 의상을 교사가 직접 입고 나온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칭찬해주시면서 다음 문장은 이렇게 이어졌다. "한 마디라도 아라비아 어를 할 수 있었다면 학생들이 더 재미있어했을 겁니다."좋은 지적을 해주셨다. 나 역시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내 이집트인 의상은 학생들에게도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3반 아이들의 자리가 바뀌었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정말 난감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시고 나 혼자 교실을 지킬 때마다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럴 때 얼마나 주의를 줘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주위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이 방법은 친구들 사이에 반목을 조장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수업에 대한 의욕이나 관심도는 목소리 같은 것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요즘 하루에 한 번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런 나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참담한 기분이 든다. 둘째 시간에 교정의 풀 뽑기를 했다. 학생들이 어떤 태도로 일을 하는지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한 나는 그저 열심히 풀 뽑는 일을 했다.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는 대신 그냥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백 젖었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담아가며 풀 뽑는 일을 계속했다. 학생들이 내 그런 뒷모습에서 무언가 느껴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스쿨이니셜
스쿨